“한국은 유엔이 정한 물부족 국가”라는 말은 2005년경 댐건설을 지속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에서 주장한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은 물이 부족하니 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1990년대 스웨덴 학자가 유엔에 낸 보고서에서 국가의 경제발전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농업 및 산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대략 국민 한사람 당 1년에 1700㎥의 담수자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그런데 한국의 1인당 수자원량은 1500㎥도 안되니 “한국은 유엔이 지정한 물부족 국가”라는 것이다.

유엔이 한국은 꼭 찍어 물부족 국가라고 지정한 사실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의 지형이나 기후 때문에 부분적으로 물이 부족한 지역은 지금도 있으나 물 때문에 우리 경제발전이 저해된 경우는 없었던 것 같으므로 한국은 유엔이 지정한 물부족국가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에는 정수장과 전기가 부족하여 제한급수를 받은 적은 있어도 지금은 한사람이 하루에 300리터에 가까운 물을 ‘물쓰듯’ 사용하고 있으니 물부족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부 시민단체나 국민들은 이 말이 나온 이후 아직도 한국은 물부족국가라고 알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물부족을 체감적으로 느끼지 못한 이유는 수입에 의존하는 식량과 사료작물 그리고 축산물 때문이다. 현재 우리 수자원의 약 절반이 농작물 관개용수로 쓰인다.

우리 식량 자급율은 매우 낮아 콩 같은 것은 거의 90%를 수입하며 소·돼지·닭을 먹이는 사료작물은 거의 전량 수입한다.

즉, 우리가 물과 비료를 사용해 작물을 키우지 못하므로 대신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이다. 어차피 인구가 많고 경작지가 좁은 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렇게 수입하는 식량 등의 생산에 사용되는 물을 가상수(virtual water)라 하며 나라 간에 물을 사고파는 같은 효과를 준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물문제는 수자원량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수질과 물환경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을 살펴보면 국토의 넓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이 길며 강 주변에 도시가 발달해 있다.

그리고 강물이나 댐물을 취수해 생활·공업·농업용수로 사용한다.

그런데 담수원에서 취수하는 수량의 비율을 WEI, 즉 물이용지수라 하는데 한국의 물이용지수는 약 40%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담수자원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4할을 연중 취수해서 사용하고 쓴물은 처리하거나 혹은 처리하지 않은 채 다시 강으로 돌려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WEI 지수가 40% 정도의 수준이면 그 물은 담수자원으로서의 생태적 건강성은 아주 낮다고 봐야 한다. 즉, 수자원으로서의 원재료의 품질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이 중 축산업이 우리 물환경에 주는 문제를 짚어 보자.

약 900만두를 키우는 돼지의 사료는 전량 수입한다. 이 돼지가 배출하는 분뇨, 즉 축산폐수를 사람의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거의 1억명 분에 해당한다.

즉, 양돈기업들로 인해 거의 1억명 분의 하수처리시설을 별도로 운영해야 하지만 실제는 그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대규모 축산업을 유지하기 부적합한 자연환경이므로 웬만하면 축산물을 수입해 먹는 것이 우리 건강과 물환경에도 좋다.

비록 여러 문제가 있지만 우리가 하·폐수를 열심히 처리하므로 아직 물을 사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물환경을 보면 수생 생물종의 다양성이 낮아지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보건위생 측면에서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런 물환경을 점잖게 말해서 ‘민감한 물환경’이라 하는데 그 속 뜻은 ‘매우 위험한 물환경’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언제든 생태문제 뿐만 아니라 보건위생문제도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 국민이 이러한 위험한 물환경에서 벗어날 방안은 없는가?
당연히 있고, 또 비교적 쉽게 해결할 방안이 있다.

이를 위해 이미 OECD 사무국은 한국과 같이 물을 많이 사용하면서 물값도 매우 낮은 나라들의 국토와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물값을 적절하게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아무리 말로 물을 절약하라고 해봐야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물을 절약하여 취수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물값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물값은 지자체 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대략 ㎥당 800원 정도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물값이 가장 낮다.

이렇게 낮은 수준이면 물을 절약할 필요도 없고 사용한 하수를 재이용할 필요도 없다.
마치 전기요금과 같이 물값도 산업 경쟁력 유지 명분이나 국민의 저항 때문에 낮게 유지하다 보니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그나마 전기요금은 전국이 동일한 체계이고 한전이라는 기관이 있어 요금을 올리고 관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물값은 지자체 소관으로 두었기 때문에 지자체장은 물값을 올리지도 않고 또 정부도 물가 걱정에 올리지 않는다.

심지어 10년간 하수도요금을 올리지 않은 지자체도 있으며 수도요금을 징수하는 인건비보다 수도요금 받는 액수가 적다고 아예 수도요금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마치 폭탄돌리기 게임을 보는 듯 위태해 보인다.

언제까지 이런 황당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아무리 이런 물문제를 지적해도 근본적인 해결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번의 물의 날이 연례행사로 지나가고 있다.
<윤주환 고려대학교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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