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주최 60여명 역사탐방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이사장 유범진)은 지난 12일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현지 여순감옥에서 역사탐방에 앞서 무거운 마음으로 잠시 포즈를 취했다./사진=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제공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이사장 유범진)은 지난 12일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현지 여순감옥에서 역사탐방에 앞서 무거운 마음으로 잠시 포즈를 취했다./사진=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제공

[여순(중국)=권병창 기자]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 수용소가 위치한 中다롄의 여순(旅顺)감옥은 총 275개 감방에 무려 2,0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규모로 악명이 높았다.

일제는 망국의 설움과 조국을 잃은 한국과 중국의 항일지사를 ‘사상범’이라는 미명으로 무차별로 검거해 이곳에 수감했다.

1906~1936년 사이에는 수감자가 연간 2만여 명에 달했던 바, 이 가운데 700여 명은 바로 이곳에서 처형된 것으로 기록된다.

특히,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수감됐던 독방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여순감옥의 당시 초소. 이역만리에서 대부분 애국지사들은 앞날이 불투명한 조국의 광복만을 꿈에도 그리며 억울하게 영어(囹圄) 몸으로 옥고를 치르거나 처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했다.
여순감옥의 당시 초소. 이역만리에서 대부분 애국지사들은 앞날이 불투명한 조국의 광복만을 꿈에도 그리며 억울하게 영어(囹圄) 몸으로 옥고를 치르거나 처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했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 선생은 물론 역사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신채호선생 역시 수감돼 있던 흔적 또한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의 만행이 가장 끔찍하게 드러난 곳은 바로 사형장으로 구전된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애국지사 등 사형수를 집행한게 아니라, 세 사람을 나란히 세워 목에 줄을 동여맸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사형을 집행한 후에는 목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느다란 쇠꼬챙이를 사체의 목구멍에 꽂아 보았을 정도로 섬뜩했다는 후문이다.

안중근의사가 수감된 여순감옥의 독방
안중근의사가 수감된 여순감옥의 독방

게다가 시신은 교수대(絞首臺)아래 나무통으로 떨어뜨려 사체를 반으로 접어 넣었을 정도로 잔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여순감옥 안에는 애국 투사들에게 악용했던 실제 고문 도구와 사진으로 소름돋는 그 당시 형상을 적나라하게 전시, 산교육장으로 보존했다.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주최 해외체험학습 참가 학생 등이 12일 뤼순일본관공법원구지 전시관 앞에서 플래카드를 펼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제공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주최 해외체험학습 참가 학생 등이 12일 뤼순일본관공법원구지 전시관 앞에서 플래카드를 펼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제공

수감전 사형선고를 내린 뤼순일본관동법원구지의 대법정은 그 당시 안중근 의사를 둘러싼 6회의 공판을 통해 법리공방을 펼친 법정의 원형을 복원했다.

2층은 고등법원 법정에서의 안중근 의사 등 네명의 재판 광경, 지방법원에서 배부한 방청권을 받고 몰려든 세계 각지의 외신기자와 대부분 일본인 방청객 등의 의자가 놓여 있다.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선생의 네명을 동시에 심판 받을 때의 법정, 안중근 의사는 재판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 죄행을 만천하에 공개, 동양평화에 대한 염원과 당위성을 만방에 떨쳤다.

그 당시 법정에 참관한 안 의사의 모친은 이미 아들의 수의를 손수 마련한 데다 1심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지만, 항소하지 말고 당당하게 죽음으로 맞이하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숙연함마저 느끼게 했다.

1910년 4월 16일자 영국 더 그래픽지 촬스 머리모 특파원이 쓴 특집 보도 역시 일본정부가 그처럼 공들여 완벽하게 진행하고 현명하게 처리한 일본식 재판의 승자는 바로 안중근이며, 그는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늠름하고 당당하게 법정을 떠났다고 논평했다.

한편,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은 15일, 국가보훈부에 등록된 국가유공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내 독립운동가는 1만 7천748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독립유공자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세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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