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옛고도 부소산과 백마강이 맞닿은 천길 낭떠러지는 한떨기 꽃처럼 사라진 3천 궁녀의 전설이 구전된다.

목가적인 고란사를 향하다 만나는 부소산성을 둘러보거나 곳곳에 즐비한 백제문화의 잔흔은 아직도 살아 숨쉬는듯 기이롭다.

장구한 세월 속에 백마강과 부소산이 빚어낸 천혜의 자연비경을 품안에 안은 겨울산사 고란사는 물론 뒷자락의 고란초는 백제흥망의 비련을 간직한채 오늘도 말없이 내려보는듯 하다.

어딘가 이름모를 텃새가 노래하며 아름드리 낙랑장송이 우거진 천년고찰은 패망한 당시의 통한이 서린듯 처연한 분위기마저 배어난다.

백제를 지키던 요새의 하나였던 임천면 성흥산성 인근이 고향인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졸업여행을 반친구 서넛과 어울려 단출한 손가방 하나만을 둘러매고 고란사에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40여 년전 추억이 담긴 낙화암과 고란사는 한눈에도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고상한 베일을 간직하고 있다.

반세기 남짓 지내온 내 삶의 한켠에 자리잡은 찬란한 역사문화의 터전이 있는 부여, 그리고 낙화암과 고란사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이 남아있다.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백마강 지류에 우뚝 솟아있는 부소산 자락 고란사는 새색시의 두볼인양 두 눈에 들어오며 지친 여독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사료가치가 높은 고란사 경내 고란초 역시 이제는 우리들의 기억에만 아스란히 존재할 뿐, 가능한 선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영구보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손에 길이 보전할 학술적 가치가 다분한 고란사는 이웃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백제문화 명소 가운데 으뜸으로 모자람이 없다.

백제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자라나는 꿈나무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며 옛 풍취마저 느낄 수 있는 탐방 코스로 오르내린다.

단순한 볼거리를 관광하려 부여를 찾는 것이 아닌 진정 역사탐방을 즐길 줄아는 소명의식마저 기대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요즘같은 겨울이면 고란사와 낙화암 주변 일대를 둘러보고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고란사 경내 ‘옥의 티’로 아쉬운 점은 다름아닌 사찰뒤 단애에 자생하던 고란초가 사라진 것이다.

그 어린시절 고란초의 아련한 추억과 전설이 빛을 잃어가는 지금이라도 백제문화의 상징이던 고란초를 되살리는 범군민적 소명과 출향인들의 릴레이 운동을 불지피면 어떨까 싶다.

그 어느 명승지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곳이기에 빼어난 경관과 울창한 산림의 낙화암 비경을 좀더 관리보존에 눈을 돌릴 때가 아닌가 한다.

예로부터 최고의 역사 명승지로 손색이 없던 부여의 상징으로 관광자원 개발과 퀄리티를 높일 문화유산 관리에 행정력을 더해주길 기대해 본다.

지루하지 않게 굽이굽이 산자락을 오르다 보면 곧이어 낙화암과 고란사가 한눈에 들어오던 마음속의 쉼터. 기회가 되면 다시한번 찾아가고 싶은 백제의 왕도-부여.

백제 역사의 꽃이 찬란하게 피어오른 부소산성에 대한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역할과 소임을 반문해 본다.

일상에 찌든 도시인들의 정신적 향유를 만끽하기에 부족함 없는 고란사는 피톤치드 풍성한 쾌적한 산책길을 이끌며 온유한 마음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하늘높이 치솟은 송림과 눈이 시리도록 푸르름을 간직한 고란사를 향하는 길은 언제나 다시걸어도 상쾌함을 안겨준다.

비록 고향을 떠나온지 4반 세기를 넘어서지만, 여전히 동심을 안기며 손짓하는 고란사의 영상은 언제나 새롭기만 하다.

오랜 친구와 향우를 만나듯 모처럼 고란사를 찾아가도 말없이 반기는 약숫물과 기억속 고란초는 아낌없는 애향심을 고취하며 여독을 달래준다. 

12월의 세밑, 몸과 마음의 여유를 틈내 아름답고 정겨운 고란사를 찾아 질곡속에 핀 방초인양 이제는 슬픈 뒤안길의 괘적을 날려볼까 한다.

마치 흔적조차 사라진 마음속의 고향을 그리며, 가슴속 평안을 뒤로 임진년 새해 소망을 꿈꿔볼 심산이다.

<상기 글은 부여군이 11월30일까지 접수받은 백제의 고도 부여관광 여행수기 공모에 출품했던 수필 기행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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