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 회산 백련지

무안의 연은 청아한 백련이다. 회산 백련지에서는 나무데크길을 따라 가까이서 연을 만날 수 있다.

무안의 연은 청아한 백련이다. 회산 백련지에서는 나무데크길을 따라 가까이서 연을 만날 수 있다.

전남 무안은 연(蓮)과 차의 은은함이 깃든 고장이다. 새벽녘 회산 백련지 주위를 거닐며 연꽃차 한 잔 들이키면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기분이 전해진다.

깊은 연잎과 연꽃을 만나려면 무안 일로읍 회산 백련지에 머물 일이다. 동양 최대의 백련 서식지로 33만 평방미터에 아득하게 꽃을 피워내는 곳이다. 법정 스님은 백련지와 처음 조우한 뒤 “여름 더위 속 회산 백련지 2천리 길을 다녀왔다.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았다.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한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무안의 연은 청아한 백련이다. 전라도 땅에는 백련, 경상도 땅에는 홍련이 자라나는 ‘홍동백서’의 모습을 갖췄다. 회산 백련지에서는 나무데크를 따라 탐방길을 걸어도 좋고 곳곳에 마련된 정자에 앉아 연꽃차 한 잔을 기울여도 좋다.

탐방로 곳곳에는 애기수련, 가시연, 노랑 꽃창포 등 다양한 수생식물이 서식한다. 잉어, 자라 등이 헤엄치는 정경도 엿볼 수 있으며 느닷없이 물닭이 연못으로 뛰어드는 소리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연꽃차는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만든다.
연꽃차는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만든다.

연꽃은 새벽 햇살을 받아 꽃잎을 열고 해가 기울면 꽃잎을 닫는다. 아침안개가 자욱한 시간에 백련지 앞에 서면 방석 만한 연잎과 하얀 꽃들이 만들어내는 그윽한 향연을 고요히 감상할 수 있다. 새벽녘 이슬을 머금은 연잎들은 꽃보다 청아하게 빛난다. 바람이라도 한 점 불면 작게 하늘거리며 소리 없는 군무를 만들어낸다. 8월이면 연꽃이 가장 만발할 시기다.

회산 백련지 정자에 앉아 연꽃차 한 잔 기울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막 따낸 백련꽃에 따뜻한 물을 부으면 꽃잎과 함께 은은한 향이 퍼진다. 연꽃차는 원래 뜨겁게 마시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물에 중화시켜 여러 번 마셔도 좋다. 그 맛이 또 녹차와는 다르다. 오래 담가도 텁텁한 맛이 없으며 여리고 향긋한 맛이 배어난다.

초의선사 생가터.
초의선사 생가터.

무안은 대표적인 자기 산지이기도 하다.
무안은 대표적인 자기 산지이기도 하다.

무안 주민들의 삶 속에 배어든 연

백련은 차로 마실 뿐만 아니라 꽃부터 뿌리까지 식용으로 고루 사용된다.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려주는 무안의 연 음식들 중 간판격에 해당하는 것이 연잎밥이다. 연잎밥은 어리고 성긴 잎 대신 숙성한 연잎만을 이용한다. 수확한 연잎을 잘 보관한 뒤 찹쌀·수수·콩·밤·대추·잣·호박 등 갖은 재료들을 넣고 함께 쪄낸다.

쪄내는 과정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다양한 잡곡이 들어간 밥을 짓고 다시 연잎에 싸서 50분간 찌고 10분간 뜸을 들여야 한다. 연잎의 향과 맛이 밥에 제대로 깃들려면 두 시간가량이 소요되는 셈이다. 다 쪄낸 밥을 한 숟가락 떠 넣으면 맛보다 향이 먼저 와 닿는다. 밤·대추 등이 단맛을 내는 반면 연의 향은 그윽하고 부드럽다. 시간과 정성이 깃든 연잎밥은 대표적인 슬로푸드로 사랑받고 있다.

연잎밥 외에도 무안의 연 음식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예전부터 무안 주민들은 김치에 연근을 담가 먹었다.

“김장할 때 연근을 넣으면 김치가 금방 묵지 않고 오래간다니께요.” 마을 여인들은 식은 밥도 연잎에 싸 놓으면 잘 쉬지 않는다며 연 자랑이다. 최근에는 연근의 아삭아삭한 맛을 즐기기 위해 수육에 연근과 묵은지를 곁들여 먹는 삼합요리나 연근지지미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삭아삭한 맛을 내는 연근지지미.
아삭아삭한 맛을 내는 연근지지미.

다양한 잡곡이 들어가는 연잎밥은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다양한 잡곡이 들어가는 연잎밥은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무안 사람들에게 연은 이처럼 삶 속에 깊숙이 배어 있다. “지혈에도 효과가 있어 할머니들이 손주들에게 코피만 나면 연잎을 갈아서 먹이고는 했다”는 게 그네들의 추억이다.

청정 갯벌과 황토를 간직한 무안 땅은 회산 백련지 외에도 사색을 위한 공간들을 소담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킨 초의선사 유적지와 무안의 흙을 혼으로 재현한 분청사기 도요지는 무안 여행의 향과 멋을 더한다. 무안은 조선후기 차문화를 정착시킨 초의선사가 태어난 곳이다. 초의선사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과 차의 깊이를 나누며 학문을 공유했다. 초의선사 출생지에는 생가, 추모각과 더불어 차문화관 등이 건립돼 있다. 몽탄면 사천리와 몽강리에 위치한 무안 도요지는 삼국시대부터 옹기와 질그릇 등을 만들어 온 곳으로, 최근에도 후예들이 순수한 전통기법으로 백자·분청사기 등을 재현해 내고 있다.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무안 청정갯벌

무안은 갯벌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무안 갯벌은 200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으며 국내 최초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해제면 송계마을과 현경면 용정리 등에는 무안의 청정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도리포 가는 길의 무안갯벌생태센터 역시 호젓한 갯벌 산책을 돕는다. 고즈넉한 여름바다와 해송을 음미하려면 도리포 방향 홀통 유원지와 망운면의 조금나루 유원지를 들러보는 게 좋다.

무안의 청정 갯벌은 람사르 습지로 등록돼 있다.
무안의 청정 갯벌은 람사르 습지로 등록돼 있다.

무안 세발낙지는 기운이 센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무안 세발낙지는 기운이 센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무안의 5미’ 중 여름 보양음식을 맛보는 것은 발걸음을 더욱 들뜨게 만든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읍내 낙지골목에서 기운 센 세발낙지로 아침을 맞는 것은 활기차다. 연포탕만 시켜도 남도의 각종 젓갈과 김치 등 반찬이 10여 가지 나온다. 암퇘지를 짚으로 구워낸 삼겹살을 게젓에 찍어 먹는 사창리 짚불 삼겹살도 별미이며 영산강의 마늘 먹인 장어도 원기를 돕는 데 손색이 없다. 무안의 식당 어느 곳에서나 황토에서 자란 달고 매콤한 양파김치가 깔끔한 반찬으로 넉넉하게 곁들여진다.
글과 사진·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2014.08.22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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