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순원의 한가위 에세이>

지금도 강원도 대관령 아래 내 고향에 가면 아주 따뜻한 가을 풍습 하나가 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마을 이장님이 집집마다 한 명씩 마을회관으로 나와 주십사 하고 동네방송을 한다.

며칠 전 불어 온 태풍에 벼가 깔리고 마을길이 울퉁불퉁 파이면 객지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쓸쓸하고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하루 마을길도 단장하고 네 논 내 논가릴 것 없이 큰길 가에 쓰러진 벼를 함께 힘을 합쳐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외지에 나갔던 아들딸들이 마을로 들어올 때, 너희들이 객지에 나가 있는 동안 우리도 이렇게 마을을 잘 지키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걸 우리는 ‘추석 길닦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마을의 큰길 작은길 모두 시멘트로 포장해 웬만큼 비가 내려도 삽을 들고나갈 일이 없지만, 그래도 마을에 남아 있는 나이 든 어른들이 해마다 추석 전 회관에 모인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이라도 깨끗하게 깎아 마을 전체의 모습을 보기 좋게 하자는 것이다.

그 길을 잘 단장하며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딸과 손주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길이 마치 명절을 맞이해 새로 이발한 아이의 머리처럼 단정해 보인다.

‘효율’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고향

객지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도 고향으로 올 때 빠뜨릴 수 없는 게 선물이다.
아버지 어머니 선물뿐 아니라 이웃 어른들께 드릴 작은 선물들도 준비한다.

나는 오래 전 초등학교 동창인 이웃집 여자아이가 동네 집집마다 돌렸던 선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친구는 중학교 졸업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어느 공단에 있는 직물회사에 다녔다.
처음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 것도 어느 해 추석 뒤끝에 집안 어른들 몰래 먼저 서울로 간 동네 선배 언니를 따라서였다.

그 아이는 어른들 몰래 집을 떠나 몇 해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해 추석 때 한 아름 선물을 안고 돌아온 그 아이는 동네 집집마다 어머니와 함께 인사를 다니며 이다음 아기 낳으면 기저귀감으로 쓰라고 서울 공장에서 자기가 짠 ‘소청’을 돌렸다.

동네 어른들 모두 장하고 착하다며 제 딸처럼 그 아이의 손을 어루만졌다.
나도 추석 때 고향에 가면 매년 형제들과 함께하는 일이 있다.

우선 어린 시절에 했던 대로 추석 차례상에 올릴 과일을 우리 손으로 정성껏 준비하는 것이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심은 많은 나무 가운데 어느 나무의 감과 밤이 가장 알이 굵고 빨리 익는지 우리가 먼저 알고 따 온다.

장대와 삼태기를 들고 밤을 따 오는 길에 여름에 소를 먹이러 다니며 보아 두었던 다래도 따 오고 머루도 따 온다.

저작권자 © 환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