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운 내십시오” 위로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충북 제천의 사고현장을 방문, 관계자로부터 사고현황을 보고받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9명의 희생자를 낸 제천시 화재참사 현장을 전격 방문해,“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2일 오후 사고현장에 들러 사고수습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사고수습과 대책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제천서울병원 방문을 시작으로 희생자들이 안치된 빈소를 차례로 들러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날 오후 2시15분, 문 대통령이 제천서울병원에 도착하자,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시종 충북지사, 이근규 제천시장 등이 영접했으며, 문 대통령은 현관에서 이시종지사에게 사고 상황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청취하기도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곧바로 빈소를 찾았다.

빈소의 유족들은 불의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므로 표정에서 슬픔과 충격, 공포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빈소에 문 대통령이 도착하자 유족들은 "결과 좀 알려 주세요"라고 흐느끼거나, "뭐야, 사람이 죽었는데!"라고 소리 지르는 등 격분하기도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일일이 이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등 슬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대체로 격앙되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유가족들은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게 한두 번입니까?","초기대응만 잘했어도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죽여 놓고 오면 뭘 합니까" 등으로 항의성 고성이 이어졌다.

대통령을 만난 한 유가족은 문 대통령을 보자마자 쓰러지며 오열했으며, 문 대통령은 굳은 표정속에 말없이 그들의 등을 토닥거리거나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

이런 상황에 일부 유가족은 취재진들에게 "사진 찍지 마세요"라고 항의했으며, 유가족으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은 문 대통령을 보자마자, "사람이 죽었습니다"라며 오열했다.

뒤편에 서 있던 유가족들 중에는 "수사가 어떻게 되어가나요. 결과 좀 알려 주세요"라고 질문하고 “더 많이 살릴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라는 등 당국의 초기대응에 불만을 터뜨렸다.

<유가족들과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사진=청와대 제공>

옆의 또다른 유족은 "‘사람이 먼저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사람이고 뭐고 없었어요. 하나 말씀드리면 화재가 났으면 구조를 해 줘야죠”라는 등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한 유가족에게 문 대통령은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묻자 희생자의 남편이라는 유가족은 “아내가 죽었습니다. 사우나실 통유리를 못깨서 죽은 겁니다. 통유리만 일찍 깼어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겁니다. 제가 용접을 해서 잘 압니다. 이거 일당 10만 원짜리 안전사만 놔뒀어도 이런 사고가 안 났습니다. 그 인건비 아끼려다 이렇게 된 겁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용접할 때 1명의 안전관리하는 사람만 있었어도 됐다는 말이죠, 통유리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를 잃었다는 다른 유가족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통유리에 갇혀 나올 수가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라고 전하자 유족의 손을 붙잡고 등을 다독이면서 “황망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운 내십시오”라고 위로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조카가 초등학생인데 한순간에 엄마를 잃었습니다. 죽은 언니 애가 13살입니다. 평소에도 봉사를 정말 많이 하는 언니인데, 통유리 때문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평창올림픽도 잘 돼야 대통령이 잘 된다고 봉사활동 열심히 하는 열혈 지지자였습니다. 멋진 언니였습니다. 꼭 기억해 주세요”라고 애통해 했으며 문 대통령은 손을 꼭 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계속 유가족석을 돌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침통한 표정으로 있는 한 유족에게 문 대통령이 “누가 돌아가셨습니까?”라고 묻자 “형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나라 사회 안전망이 이렇게밖에 안 된다니 좌절감만 느낍니다. 각층에 소방관이 있어서 진화를 했더라면 피해가 더 크지 않았을 거에요”라고 당국의 안전관리에 불만을 성토했다.

한쪽에서는 “진상규명을 부탁드릴게요. 탈출을 하려해도 문이 좁아 탈출을 못했나 봅니다. 꼭 좀 억울한 사연없게 힘써 주십시오”,“비상구가 문제입니다. 정말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갇혔습니다. 구해주는 것 기다리다가 다 죽었습니다”라며 안전관리 미숙에 거칠게 항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의 항의에 일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면서 대통령에게 일어나서 인사하려는 유족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만류한 뒤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어나실 필요 없습니다. 앉아 계십시오”라고 말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더했다.

이에 유가족 중 한 명이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으며, 이후 대통령은 유가족 대표 2명과 빈소 한 쪽 비어있는 테이블에서 공개면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유가족 대표들은 2층 사우나의 통유리 문제를 짚었다.

한 유가족이 “세월호 이후에는 좀 나아지는가 했는데 우리나라 안전시스템에 나아진 게 뭡니까. 2층 통유리를 깼으면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텐데 유리를 깨지 못하고 밖에서 물만 뿌린 것 아닙니까?”라고 지적했다.

다른 유가족 대표도 “제가 화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소방차가 오후 4시에 출동을 했답디다. 그런데 통유리를 오후 5시30분에 깼다는 게 말이 됩니까. 사우나에 있던 사람들은 락커에 가서 옷까지 갈아입고 구조만을 기다리는데 다 죽었잖습니까”라고 항의, 대체적으로 2층의 통유리를 깨지 않아 많은 희생자를 낸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이들의 항의를 묵묵히 들은 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감고 경청하고는 “범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정부가 사고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첫 유가족과의 면담이 끝난 뒤 서울병원을 떠나 또 다른 빈소가 차려진 명지병원으로 향했다.

뒤이어 오후 3시17분께 명지병원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이곳에서도 유족들을 위로한데 이어 제일장례식장, 세종장례식장, 보궁장례식장을 잇따라 방문, 유가족을 위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권병창 기자/제천=강기영-이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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