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먼바다의 수평선은 그 해저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검푸른 격랑으로 사뭇 공포의 대상이었다.

육중한 해군 DD-구축함의 함수를 향해 내리치며 항로를 거부하던 황천 1,2급은 가히 일반 상선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높은 파고를 연출한다.

새벽녘이면 1만8,000야드를 넘는 수평선의 고요한 바다는 육상에서의 호수를 만난 듯 신기하리만치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1978년 첫 부임지로 명령받은 DD-913 부산함에 승조한 나는 호연지기를 새기며 해상방위의 소임을 뒤로 간혹 낭만으로만 여겼던 동해바다였다.

모 기지에서 출항해 동해 연안을 먼발치로 바라보며 북쪽으로 항진하다 수시간후면 동해 모처의 해군기지에 기항하며 울릉도와 독도 라인을 가로지르는 초계근무에 들어갔다.

어언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해상근무 당시의 수병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며 세찬 바닷바람을 비켜 격랑에 맞서던 함상 생활을 잊을 수 없다.

가장 큰 위용을 자랑하던 구축함에는 함장을 비롯한 300여 명이 승선해 각자 맡은 소임아래 1년이면 365일 주야간 24시간 내내 항해와 견시를 섰다.

낙조의 아름다움은 그 어디에서 볼 수 없는 황홀한 선경을 빚어냈다. 황금빛 물결을 출렁이며 드넓은 난바다를 잠재우는 고요함은 더없이 아름답다.

7,8월 여름이면 바다 날씨의 일기불순 예보에 따라 어김없이 돌고래들이 군무를 이루며, 군함 주변을 쏜살같이 지날때면 일대 장관을 선사한다.

아직도 눈에 선한 돌고래 떼 무리가 오랜 함상생활에 지친 수병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으리라.

맑고 깊으며 청정해역으로 이름높은 동해는 서해와 남해와는 달리 언듯 보아도 검푸른 해수면에 주눅들기 일쑤이다.
쉽게 가볼 수 없던 외로운 독도는 저편 멀리 손저으면 맞닿을 듯한 금강산 원경에 버금가는 그 명경을 자랑한다.

필자는 바다와는 동떨어진 백제의 옛 고도 충남 부여에서 자랐던지라 큰 형의 해군 복무에 이어 작은형과 나 또한 주저없이 해군에 자원, 바다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하얀 정복과 겨울이면 한껏 멋을 더해주던 세일러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로 남아 문뜩 그리울 때가 다반사다.

해저의 깊이를 모를 동해 바다에서의 2년여 남짓 해상 근무를 마치고 부임한 육상근무는 다름아닌 해군사관학교 군사학처였다.

그러나 내 삶의 한 지평을 펼쳐준 동해상의 함상 시절은 이제 되돌아 올수 없는 한편의 궤적으로 각인되며 각종 시련과 어려움을 맞닥드릴 때는 또하나의 용기를 북돋워 준다.

국내외로 잇따른 경기침체와 일상이 번거롭고 모진 시련이 다가와도 난 33년전의 바다 생활을 되뇌이곤 한다.

찬란한 희망의 불빛이 와닿듯 질곡속에 핀 방초인양 흔들림 없이 지켜준 해군 시절의 고마움을 다시금 상기해 본다.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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