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기엔 가슴아프고 어려운이야기들,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립니다"

‘환자안전법’이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는 정말 될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렇게 하나의 법률이 되고 보니까 감개무량합니다. 환자안전법은 ‘환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법률로서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 있는 법을 만드는데 제가 일조를 했다고 하니 여전히 믿기지 않네요.”

지난 8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연합회) 주최하는 제13회 ‘환자샤우팅카페’가 ‘샤우팅 그리고 그 이후’라는 주제로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렸다.

2012년 6월 27일 제1회 ‘환자샤우팅카페’를 시작한지 이제 약 2년 반. 많은 환자가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했고, 참여자들은 공감하며 함께 분노했다. 그래서 샤우팅이 샤우팅으로 끝나지 않고 힐링과 솔루션으로 이어져 고통 받는 환자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이날 제1회의 첫번째 발표자였던 김영희 씨는 백혈병 빈크리스틴 투약오류로 사망한 아들 정종현 군을 떠난 보낸 후, 어떻게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을 이어왔는지 이야기하며 그간의 소식을 알렸다.

‘환자샤우팅카페’에서 “발표자로 나서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립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이야기할지, 과연 내 억울함을 잘 공감해줄지 잠도 못자고 고민했는데, 그게 기우였더라고요. 그날 제 샤우팅에 참석해주신 분들이 같이 울어 주시고 분개해 주시고 해서 참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김영희 씨는 “그래도 응어리가 이렇게까지 풀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며 “그중 환자단체연합회과 인연이 되어 시작한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으로 인해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해줄 수 있어서 지금 마음이 좀 더 편해진 것 같다.”며 소감을 말했다.

종현의 엄마는 ‘환자안전법’ 국회 통과 소식을 알렸고, 영준의 아빠는 ‘환자샤우팅카페’ 이후 마음이 다소 치유됐음을 전했다.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다리 수술을 받던 중 마취 의사사고가 발생해 갓 100일된 지능을 가진 아이가 되어버린 손영준 군의 아버지 손상현 씨도 제3회 ‘환자샤우팅카페’ 참여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소개했다.

“마취를 레지던트(전공의)가 해서 우리 아이가 사고를 당하게 됐는데, 병원에서 문제가 됐던 선택진료비만 돌려주고 잘못 없다고 하고, 경찰에서도 아무 문제없다고 하는 등 상식적으로 어이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환자샤우팅카페’에서 가슴속 마음의 말을 하면 함께 방법을 찾아주시고 고민을 해주시니까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특히 손상현 씨는 “의료사고 환자가족들이 ‘환자샤우팅카페’만큼 이해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 시간들이 보다 나은 의료시스템을 만드는 논의의 장으로 발전을 해나갔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날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바로 의료소송 패소 소식이다. 제8회 ‘환자샤우팅카페’에 출연했던 김태현 씨는 머리가 아프다며 응급실에 갔던 아들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 과정에서 병원의 잘못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후, 의료소송을 철저히 준비해 왔다고 한다. 샤우팅 당시에도 꼼꼼히 준비한 자료를 보면서 “승산이 충분히 있다”며 승소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전한 소식에 모두들 침통해 했다.

김태현 씨는 “장기기증으로 아들의 남긴 사랑과 나눔이라는 숙제는 했지만, 이 억울함은 풀지 못할 과제로 남을 것 같다.”며 절망감을 드러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그리고 끝까지 싸울 것

제13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는 결연한 다짐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제10회 ‘환자샤우팅카페’ 참여한 전예강 양의 엄마 최윤주 씨가 그 주인공이다. “몇 시간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딸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무기력감에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이제는 강아지도 키우고 등산도 다니며 힘들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용기를 내고 있다.”며 현재의 심경을 드러냈다.
 

 
최윤주 씨는 ‘종현이법’이 나왔듯이 ‘예강이법’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이가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었는데, 법대로 하라는 병원의 말을 들었을 때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의료분쟁 조정신청을 했는데, 병원이 응답하지 않자 자동 각하가 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꼈지요. 정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환자단체연합회을 만나 의료분쟁 조정신청이 있으면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더라도 바로 각하할 것이 아니라 우선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고 다만 조정할 것인지 여부는 최종적으로 양당사자의 자유에 맡기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운동을 시작하게 됐네요.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제 자신이 무너지는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더 이상 울면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고요.”

최윤주 씨는 “종현이법이 나왔듯이 예강이법이 나오도록 열심히 할 것”이라며 “그것만이 지켜주지 못한 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인 것 같다.”고 말하며 앞으로 더 최선을 다할 뜻을 밝혀 참석자들의 우레와 같은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운동을 하면서 과연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감이 크게 있지는 않았지만 종현이 어머니와 영준이의 아버지를 보면서 그 가족들이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를 내주기만 해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쉽지도 않겠고 바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예강이의 사례를 통해 언젠가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조항인 ‘예강이법’이 만들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단언했다.

다양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울분을 터트리던 환자샤우팅카페. 제11회 발표자인 서동균 씨도 그중의 하나였다.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마취 주사를 잘못 투여해 사망한 서지유의 아버지인 그는 ‘환자샤우팅카페’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상황에 대해 소식을 전했다.

“아이가 떠난지 7개월이 지났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게 살아왔는데 오늘 여기에 와보니 마음을 다잡고 용기내시는 다른 환자분들에 비해 너무 땡깡 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3개월 만에 부검이 끝나서 형사소송에 들어갔고, 내일이면 민사소송도 들어갑니다. 며칠 전에는 업무상과실치사죄 형사고소 건으로 장시간에 걸친 대질 신문도 받았네요. 다행히 업무상과실치사가 경찰에서 인정돼서 검찰로 넘어갔고 검사도 배정된 상황입니다. 저는 무조건 그 병원에 벌을 주고 싶습니다. 의료소송 자체가 환자에게 불리해서 불안감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해나갈 겁니다.”

그는 “그것만이 지금으로서는 지유의 억울함을 풀고 제2의 지유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인 것 같다.”고 말하며 굳은 각오를 보였다.

여전히 고통 속에서, 그저 하루를 견딜 뿐

이날 고(故)신해철 씨에 대한 이야기 화제가 됐다. 그의 억울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그가 받았던 주목을 일반인들은 왜 받지 못할까에 대한 속상함이었다. 그중 감기로 입원했다가 싸늘한 시신이 되고 만 제10회 참여자 김유비군의 아버지 김기후 씨는 자신은 아들 부검만 석달, 의사자문도 석달 반이 걸렸다며 한숨을 내보였다.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여전히 고통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직도 잠을 못잡니다. 약을 먹고 자도 눈만 감으면 유비 얼굴이 계속 떠오르고 어딜 가도 아들과의 추억에 숨이 턱턱 막힙니다. 아내가 딴 생각이라도 할까봐 참고 있지만 견디는 것 자체가 고문입니다. 어떤 때는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랄 정도랍니다. 그저 하루를 견디고 있네요.”

김기후 씨는 “왜 우리는 신해철 씨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유비 사건도 경찰이 그렇게만 해줘도 덜 억울했을 것 같다.”며 여전히 섭섭한 마음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권용진 서울북부시립병원장은 “오늘은 환자샤우팅카페 이후 근황을 알리는 자리로 마련된 만큼 조금은 분위기를 가벼울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며 “최근 사고를 당한 환자가족들,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그 슬픔의 무게는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래도 오늘의 이 자리가, 함께한 고민들이 더 나은 의료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샤우팅에 나오셨던 분들께서는 여러분 때문에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고, 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위로받으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여 언급했다.

법무법인 제현의 구영신 변호사는 “사고가 터져서 소송으로 많이들 가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환자가족들의 응어리가 완전 풀리지 않아 보였다.”며 의료소송 현장에서 느꼈던 생각을 전했다. 그리고 이어서 “환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이제는 좀 더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의사와 환자들이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화해할 수 있도록, 동반자적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좀 더 무게를 둬야 우리 사회가 싸움과 갈등이 조정과 중재의 의료문화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강기형 기자 kgh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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